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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 문화예술협동조합 빛그림, 기억속으로 특별기획전

염윤선 기자 | 기사입력 2022/07/11 [11:50]

[태백시] 문화예술협동조합 빛그림, 기억속으로 특별기획전

염윤선 기자 | 입력 : 2022/07/11 [11:50]

문화예술협동조합 빛그림(대표 이경직)먹돌배기 그 기억속으로라는 주제로 79()부터 87()까지 태백석탄박물관 전시실(3)에서 특별기획전이 개최된다.

 

▲ 문화예술협동조합 빛그림의 ‘먹돌배기 그 기억속으로’라는 주제로 7월9일(토)부터 8월7일(일)까지 태백석탄박물관 전시실(3층)에서 특별기획전이 개최된다.  © 염윤선 기자

 

먹돌배기 그 기억속으로전시는 하향산업이 되어버린 지역의 석탄문화의 생활상을 알리고자 사진작품으로 마련됐다.

 

사진작품 전시는 이경직, 김척수, 전종칠, 김병철, 강태희, 김택기 작가가 참여했다.

   

 

 

 

 

 

  

다음은 작가노트를 소개한다.

 

검은 얼굴

몽글몽글. 땀방울이 져 있는 저 친근한 얼굴이 시선에 잡힌다.

 

그 친근한 얼굴에는 시커먼 탄 가루가 묻어 검은 얼굴이 되었지만, 그래도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번져 있다. 거뭇거뭇하게 묻어있는 삶의 노고는 어쩐지 검은 얼굴을 가면 삼아 감추어낸다.

 

해는 뜨고 또 저물어간다. 그런 모든 삶을 초월한 것처럼 그 검은 얼굴이 웃는다.

 

배터리 차가 들어오는 소리, 자재 차량이 오는 소리, 인차가 사갱으로 내려오는 소리, 크나큰 원치가 돌아가는 소리.

 

익숙하고도 일상적인 소리. 검은 얼굴이 귀를 세우고, 검은 얼굴 사이로 날카로워진 눈빛은 주변의 위험을 살핀다.

 

지압으로 인해 막장의 소리는 귀가 울릴 정도로 커진다.

 

소란스러운 작업이 끝나고 막장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한 방울, 그리고 한 방울. 적막을 비집고 들어온 지하수가 갱도 수직으로 낙하하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운율은 정겹기만 했다.

 

검은 얼굴은 고개를 든다.

여기는 지하 막장,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습하고, 또 어설프다.

 

밤하늘과는 다른 어둠. 두려움이 피어날지라도 검은 얼굴들은 이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앞에는 빛이 있길 바라며 지하 막장의 밤하늘로 내려간다지상에서 약 1.2km의 지하로.

마음 속에 피어나는 불안한 마음을 얼굴에 미소를 피어내는 걸로 감추어낸다.

오늘도 검은 얼굴은 숨을 쉰다. 하얀 숨을 쉬기 위해 지하로 내려간다.

 

 

다음은 문화예술 협동조합 빛그림 이경직대표의 발간 소감을 소개한다.

 

아득한 기억 속으로

 

1996. 만개한 꽃들이 봄바람에 흩날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 나는 빛그림 모임이라는 사진 동아리를 만나게 되었다.

사진기를 손에 꼭 쥐고 의욕을 앞세워 멋대로 셔터를 누르고 다니던 청춘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었다.

멋대로, 하지만 멋있게 사진기를 손에 들었던 것이 나의 청춘이었다면 나의 아버지의 청춘은 아직은 탄광이 남아있는 이곳. 태백에 여전히 머물러있었다.

하향 산업으로 이미 잡을 새도 없이 한참 내려 가버린 석탄산업. 그 짙고 검던 흔적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내가 잡았던 떨어지던 꽃잎의 꽃말은 청춘이었던 것인지, 나는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탄광의 그림자를 밟으며 무엇인가 기록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책임감 을 가졌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탄광의 흔적을 렌즈 안에 담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발걸음 했던 어느 탄광에서는 보기 좋게 셔터 한 번 누르지 못한 채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그대로 뒷걸음질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렇게 저물어져 가는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사진기를 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그 탄광으로 한 발자국 나아섰다.

사진기를 손에 들고서 탄광을 찍고 싶다는 내 말에 광부는 썩 내키지 않는 듯이 왜, 라며 반문을 던졌다.

우리 아버지의 얼굴을 찍고 싶어요~. 광부는 그 대답에 검은 재를 잔뜩 묻힌 얼굴 사이로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조심스럽게, 또 자연스럽게 보여왔다. 별걸 다 찍네. 애매모호한 대답은 허락의 의미 인건지, 아니면 내 무모함에 혀를 내두르는 것인지. 그렇지만 나는 연실 셔터를 눌러댔다. 미소는 대게 긍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광부의 저 말의 정확한 의미를 짚어내지 못했더라도 그것 하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출발선에서 시작했다.

갱내의 막장 일에 대해서 나는 겪은 것도, 이들의 지하에서의 생활이 밖에서는 알 길이 없었으니 힘듦의 수치를 나타낼 수 없었으나, 표면적이라도 어렵고 힘든. 난이도가 있는 녹록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긴장과 함께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갱도는 30도가 넘는 지열과 높은 습도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저절로 폭포처럼 쏟아져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칠흑같이 어두운 곳이라 캡부 없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카메라후레쉬 와 같은 것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작업자의 안전이 그 까닭이었다. 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허락된 것은 캡부에서 쏟아지는 빛이 전부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당연하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갱도 입구에는 약 600m 정도 안쪽에 지하갱도로 내려가는 사갱과 함께 직하로 1.2km 수직으로 내려가는 수갱이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이 긴 수갱에 몸을 싣고 내려갔다.

함께 수갱에 몸을 실었던 광업소 간부가 650, 하고 무전을 하니 우리가 타고 있던 수갱의 엘리베이터는 거침없이 650m까지 내려갔다.

-650m에 도착하여 미리 준비되어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배터리 차를 타고 미로와 같은 굴속을 지나가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캣부에 의존한 채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을 완전한 어둠이 가지는 중압감에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호흡을 세어가고 있을 때 캣부는 막장을 향해서 나아갔다.

 

한 명이 서 있기도 벅찬 막장에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처럼 작업 노동자 세 명이 함께 들어섰다. 이 비좁은 공간으로 사이로 석탄 먼지가 들어와 코를 틀어막히게 하고, 땀은 눈으로 흘러 들어가 고통에 벌게진 눈을 부여잡게 만들었다. 이러한 카오스 속에서 머리에 있는 작은 등에 의존하여 사진기의 초점을 잡는데, 불운은 한 번에 밀려온다고. 사진기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초점을 잡을 수도 없이 어두운 이곳에서 나는 함께한 사부의 머리에 등을 빌려 간신히 초점을 잡아낸 후 셔터를 눌렀다. 이 어둡고 더운 곳에서 얻어낸 소중한 한 컷이었다.

그 한 컷을 시작으로 선산부 들과도 얼굴 을 대면하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철저히 이방인. 작업 노동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울타리 안에 이방인이 들어온 것을 반기지 않았다. 경계심이 들어찬 눈 안에 비친 내 모습은 객과도 다름이 없었다.

그런 객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이 못내 우스웠나 보다. 한 노동자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미소는 울타리를 허물고, 경계심을 녹아내리는 힘이 있는 것인지, 한참을 미소 짓던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주제는 노동, 그 어느 노동보다도 고된 갱내의 현실에 대해서 누군가는 알아줘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 태어나 자라고 또 노동을 하게 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과 대화 속에서 내가 답한 것은 긍정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땀방울, 어느 누군가 빛이 들어오는 곳에서 일하고 있을 때 묵묵히 어둠 속에서 일하고 있을, 자신의 청춘을 바치고 있는 이들의 지나가 버리는 청춘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거였으니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막장. 밤하늘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두려운 어둠이었다. 이런 어둠과 날리는 먼지들 사이에 시야는 뿌옇게 변했다. 그 속에서 카메라의 후레쉬 를 키는 것은 무척이나 부담감을 이고 지는 일이었다. 후레쉬를 키는 그 순간에 작업자의 눈이 안 보이게 되는 까닭이었다.

첫 만남을 그렇게 매듭 집고 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광업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친구들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그들과 조금씩 얼굴을 맞대었고 어느 날은 한 지인과 함께 자연스럽게 술잔도 기울이게 되었다.

그때 만난 한 노동자는 입 안으로 술을 털어 넣으며 본인이 처음 광산에 입갱하게 되었던 지난날을 회상하였다.

이야기는 빠르고 거침없이 이어졌다. 간드레 불을 켜고 작업하던 이야기, 막장에서 붕괴사고가 났던 이야기 등. 하나의 단편집과도 같은 이야기는 어느새 술잔을 내려놓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문득 나의 유년 시절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나는 어린 시절 광업소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탄광 사택에서 자랐다. 태백의 겨울은 시리고 춥다고들 하지만 그때의 겨울은 유난히 더 차게만 느껴졌다.

추운 사택을 막기 위해 아버지는 늘 광산에서 나오는 피쪽을 가지고 보강을 했고, 찬 겨울 바람을 막기 위해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 바람을 막았다. 우리는 다 그렇게 유난히 시리고 추운 겨울을 지나왔었다.

여전히 나는 그때의 겨울날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데 이상하게도 그때와는 사뭇 나의 주변은 달라졌다.

산동네를 멀리서 보면 온통 사택촌 이었는데, 그 많고 많은 사람 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때의 겨울을 다 잊고서 이 태백을 떠나버린 걸까.

혼자서 기억하는 그 겨울을 붙잡고 다시 찾았던 탄광.

다시 찾은 탄광에서 채탄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오는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기를 들어 한 컷 한 컷. 아주 정성스럽게도 담아냈다.

광업소 전경을 찍으며 나는 선탄 작업을 촬영하기 위해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였다.

그곳에서 작업을 하고있는 잘 알고 지내는 형수에게 조심스럽게 내민 부탁에 나는 승낙을 얻어 간이휴게소에서 작업을 준비하고 있던 광경을 한 컷. 또 선탄 작업 노동자의 작업 내용을 한 컷 담아낼 수 있었다.

탄이 내려오면서 만들어내는 귀를 울리는 소음 속에서 탄을 골라내고, 돌을 골라내던 그들은 숨 돌릴 새도 없이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들의 거칠고 빠른 호흡을 멈췄던 건 컨베어에 내려오던 탄 덩어리가 틈에 끼인 후였다. 그 탄 덩어리를 처리하기 위해 다른 작업자가 오는 그 시간이 그들이 숨을 돌릴 틈이었던 것 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익숙하고도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 어머니가 자식을 위하는 모성과 다르지 않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의 힘든 노동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진척되게 하였는가.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더 이상 춥고 시린 겨울이 아닌 따뜻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는가.

그들의 숭고한 땀방울이 우리의 사회를 지키고 발전하게 한 것이 아닌가.

그간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며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진실되게 기록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사진 작업에 큰 도움을 준 광업소 지인분들과 탄광 노동자들에게 이 사진들이 혹여나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지를 않길 바라며, 다시 한번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다 담아내지 못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또 앞으로 나와 늘 함께할, 진실된 기록을 남길 삶을 살아나가는 모든 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이것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진실 되고자 애쓴 마음이 남긴 발자국이며, 기록의 의미이다.

그 의미들이 부디 사진 속에서 기억되기를 빌어본다.

 

 

강원종합뉴스 편집국 염윤선 기자

www.kwtotal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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